편집자주 = 이 글은 김왕석 전 교수가 직접 작성한 글로, 글의  내용에 대한 편집 없이 오탈자 검수 후 원문을 그대로 올렸습니다. 본 글의 내용은 경인신문의 편집방향이나 데스크와 편집자의 의도와 관련이 없습니다.

 

▲ 김왕석 전 교수     ©경인신문

한일 관계가 갇혔다. 갇혔다는 의미는 한국과 일본이 과거의 경험과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 왜 한-일 관계가 한치도 예측할 수 없는 어두운 과거의 미로 속에 갇히게 되었는가? 원인과 대책을 살펴보기로 하자.

 

사람의 사고나 생각이란 무엇인가? 사고란 과거의 경험이나 기억이 전부다. 특별한 것이 있어보여도 사고란 과거 경험의 기억으로 꽉 채워진 것이다. 한일관계도 다르지 않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한-일 문제의 핵심과 본질은 강제징용 배상과 경제보복이 핵심쟁점이다.그렇다면 핵심쟁점이 대상이 되는 시제는 언제인가? 과거인가? 현재인가? 아니면 미래인가?

 

이 문제의 핵심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한 개인의 사고를 이루는 것은 그 사람의 과거의식과 무의식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결국 국가도 개인들의 집합체이다. 때문에 국가적 성격을 좌우하는 것도 개인과 마찬가지로 국가가 가지고 있는 의식과 무의식에 의해 국가적 성격이 좌우될 수 밖에 없다.

 

현재의 한일 문제는 명분이야 어떻든 결과적으로는 그것을 일으킨 것은 과거에 대한 사고이다. 양국의 과거에 대한 의식과 무의식의 충돌! 이른바 국가적 성격의 충돌!

 

문제의 발단은 바로 사고이며, 그런 사고가 어디에서부터 형성되었으며, 그 단초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한-일간의 국가적 성격의 차이에서부터 원인과 대책을 찾아보기로 하자.

 

첫째, 한일간의 서로 다른 환경적 입지의 차이가 두 국가적 성격을 차별화시켰다. 일본은 사면이 막힌 해양국가다. 지진, 태풍, 해일 등의 피해가 잦고 그때마다 피학적 성격이 강화되었다. 이런 환경을 극복하고자 그들은 끊임없이 가학적 침략행위를 이어왔다. 폭력과 침략, 가학과 피학 권위가 그들의 국가적 성격의 근간이 된 이유다.

 

반면 한국은 어떠한가? 역사적으로 남쪽, 북쪽으로는 대륙으로부터 끊임없이 침략을 받아왔다. 무려 931회다. 임진왜란과 청나라의 병자호란, 정묘호란 등의 전쟁이 있을 때마다 국민과 국가에는 씻을 수 없는 피학적 의식이 싹텃다. 500년 왕조도 한몫 했다. 과거에 대한 억울함과 피해의식도 고스란히 한이 되어 쌓였다.

 

한일간의 강제징용 배상과 경제보복은 이 같은 두 나라의 국민적 성격 특성을 반영한다. 역사가 만든 가학적 성격과 피학적 성격을 만들었다.

 

둘째, 한일 문제는 부분문제이다. 부분문제나 파편문제라 쉽게 생각했다. 두 나라가 공히 그렇다. 하지만 부분이란게 무엇인가? 나의 집, 나의 재산, 나의 욕망과 같이 나의 나라, 나의 민족, 나의 민주주의처럼 어떤 상징과 신화로 나를 국가와 동일화한 것이다. 민족문제가 덧 씌워지며 모순을 가속시켰다.

 

한-일 두 나라는 서로 주권을 인정하면서 과거를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공언해 왔다. 그러면서 배상책임을 묻고, 또 그것에 경제보복으로 맞선다. 형제애와 우방을 말하면서도 위선과 분열을 유지한다.

 

전체 속의 작은 문제로 보면 해결이 쉽다. 한-일간의 문제는 두 나라간의 문화와 역사와 국가적 성격이 관련된 총체적 문제다. 두 나라중 어느 한 나라라도 이런 분열의 원인을 스스로에게 물었다면 이미 해답을 발견했을 것이다. 왜냐면 폭력과 갈등의 원인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나 나의 국가가 부분에 갇히면 전체를 정확하게 볼 수 없다.

 

셋째, 시기가 엄중한 때다. 한일은 역사의 큰 눈으로 보면 이제 겨우 싹을 틔워가는 시기다. 화해와 동맹과 협력이 어느 때 보다 절실한 시기다. 이런 시기에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까? 이 문제는 사건 발생을 바라보는 두 나라의 서로 다른 사고나 생각의 차이에서 발생했다. 서로 다른 생각으로 출발해 답을 찾으려니 각각 다른 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

 

사고가 서로 다른 두 나라의 자체적 성격에 의해 제기된 문제는 역시 고립된 해답 밖에는 찾을 수 없다. 더 지속되면 혼란과 고통만 가중되는 형세다.


우선 한-일 문제는 과거의 퇴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거의 피학적, 가학적 정신에서 벗어나야 전체가 보인다. 서로 탓하는 시각을 좀더 전체적이고 총체적 안목으로 넓혀야 서로를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더 중요한 양국의 현안을 파악할 수 있다.

 

양국의 중요한 현안이 무엇인가? 세계 경제가 삼각파도에 걸렸다. 한일 경제협력이 어느 때보다 긴요하고 중대하다. 군사는 어떤가? 중국에 갑자기 시진핑이 나타나 1인 영구집권 체제를 구축하더니 중국, 북한, 러시아를 묶어 한일을 전선을 위협한다.

 

미국의 트럼프는 한일과 미국의 군사적 동맹관계를 상업주의로 변질시켜가고 있다. 이럴 때 한일은 떼어 놓을래야 떼어 놓을 수 없는 군사 동맹국이 될 수밖에 없다. 한일관계의 전체적 우선순위 속에서 부분문제를 처리하면 수월하게 풀어질 수 있는 문제다. 무엇이 위기이고, 어떤 문제를 중시해야 하는가에 대한 공감이 최우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양국이 과거의 국가적 성격의 가학적, 피학적 성격의 근본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일의 국가적 신념과 성격이 과거의 성격적 조건에 따라 반응하면 할수록, 그만큼 한층 더 과거의 세계는 강화될 수밖에 없게 된다. 과거로의 도피와 퇴행의 면면을 더 정확히 직시할 필요가 있다.

 

중앙대학교 김왕석 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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