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이 글은 김왕석 전 교수가 직접 작성한 글로, 글의  내용에 대한 편집 없이 오탈자 검수 후 원문을 그대로 올렸습니다. 본 글의 내용은 경인신문의 편집방향이나 데스크와 편집자의 의도와 관련이 없습니다.

 

▲ 김왕석 전 교수     ©경인신문

매스컴이나 길거리를 가다보면 노출이 심한 의상, 언어, 표정에서 우리는 성과 섹스에 관련된 생각을 한다. 섹스? 참 가까우면서도 먼 이야기다. 남하고 말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오래 생각하면 스스로도 민망할 정도다.

 

섹스하면 여러분은 먼저 무슨 생각이 떠오르는가? 사랑? 긍정관계 혹은 부정관계? 또 성추행,성폭행, 불륜관계 등등...이런 관계들에 대한 생각들은 자연스러운 것인가? 한번 살펴 들어가 보자.

 

봄날 아내와 광교호수를 걸었다. 따가운 햇살 속에 소나무 송화가루가 온 산과 호수를 휘덮는다. 소나무들의 번식 행위다. 마침 호수를 걷다 보니 수천, 수만마리의 월척 붕어들도 가장자리 수초들 사이에서 번식행위로 난리들이다. 송화가루, 붕어번식행위가 장엄하고 아름답다.

 

붕어번식은 적당한 수온, 수초가 무성한 가장자리와 물길이 아주 낮은 장소에서 1년 중 어느 하루, 이틀 안에 이뤄진다. 이것이 붕어의 번식행위 조건이다. 이것은 일치성으로 볼 때 분명 자연의 섭리다. 나는 곰곰히 생각했다. 이런 자연섭리의 번식행위와 인간의 섹스행위는 과연 같은 것인가? 혹은 다른가?

 

사람들은 섹스행위를 자기선택과 자율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섹스는 동물들의 본능행위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면 붕어의 적정수온과 가장자리 수초 등의 자연섭리의 조건처럼 사람도 이런 섹스 조건을 증명 할 수 있을까? 그것을 확인하면 사람도 자연번식 조건을 따른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사람과 섹스와 섭리? 쉽지 않겠지만 그 조건을 찾아보자.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떤 동기로 인해 섹스에 집착할까?

 

재산이 많든, 적든 신분이 높든, 낮든 기업가이든 노동자이든,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괴롭고 고통스럽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떤 삶이든 삶 자체는 경쟁이고 갈등이며 투쟁이기 때문이다. 이런 삶의 조건 속에서는 내 종교, 내 이념, 내 소유, 내 권력에 매달릴 수밖에 없고, 이런 생존에 쫓길수록 우리는 섹스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왜 그럴까? 왜 탐욕, 소유, 고뇌가 깊을 때 우리는 섹스에 더 집착할까? 사업, 경제, 정치, 생존의 영역에서 고통을 잊을 수 있는 방법은 망각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섹스행위의 순간은 어떤 탐욕도 공포도 고뇌도 망각하게 된다. 섹스를 하는 순간과 시간만큼은 우리는 고통과 고뇌를 망각한다. 놀랍게 섹스가 무념과 무상, 무아를 실현시키기 때문이다.

 

자아를 망각하고 내가 존재하지 않을 때 내 속의 모든 고통과 고뇌는 사라지게 된다. 자아가 존재하지 않을 때 의지, 탐욕, 공포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비록 짧지만 명상의 경지 형태이다.

 

사람들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악몽, 고통, 공포를 일속에서 만들고, 또 그것을 망각하고 싶어 한다. 사람의 정신이 갖고 있는 성취와 망각의 이중성이다.

 

모든 생존 조건이 고통, 공포, 악몽이라면 그것들을 망각할 수 있는 것은 이 조건밖에 없다.사람들이 섹스에서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이유다. 스포츠, 여가 등은 섹스행위에 비해 훨씬 부차적이며 2차적이다.

 

붕어들의 자연번식 행위 조건처럼 사람들의 섹스행위는 쾌락과 망각을 통해 생존의 고통을 망각하게 해준다. 이것이 사람들이 그토록 섹스에 집착하는 이유다. 금욕과 성적행위가 오래 통제되면, 자기도 모르게 점차적으로 신경성적 정신질환을 앓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동식물의 번식행위처럼 사람들의 섹스행위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것은 죄악도, 숨길 일도,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자연의 섭리고, 인간다움의 본질이다. 섹스문제는 섹스행위가 아닌 생각에서 발생한 것이다. 사람들의 생각을 거치면서 섹스문제는 왜곡되고, 뒤틀리고 변화된 것뿐이다.

 

사람들의 섹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순전히 가공적이며 정신의 상상, 환상, 몽환에서 빚어졌다. 우리들의 정신이 섹스에 대해 정당한 위치를 부여할 때 섹스는 불순한 것도 순수한 것도 아닌 섹스본연의 위치가 찾아질 수 있다.

 

섹스행위에서 오는 쾌락과 망각의 조건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범접할 수 없는 섭리의 차원이다.

 

중앙대학교 김왕석 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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