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 참견, 역사왜곡 주장 사실일까??

 

▲ 영화 나랏말싸미 공식포스터(사진 - 네이버영화)     © 경인신문


[경인신문 이성관 기자] 배우 송강호는 올여름을 기분 좋게 시작했다. 칸영화제에서 영화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또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관객이 들어 흥행에도 성공했기 때문이다. 칸에서 봉준호와 기생충을 외치는 소리가 울릴 때, 감독과 배우가 포옹하며 나누는 대화가 연일 화제가 될 만큼 영화성공의 중심에 그가 있었다.

 

늘 승승장구 해온 것처럼 보이지만 송강호는 작년 평단과 관객의 혹평을 받아 흥행에까지 실패한 영화 ‘마약왕’의 주인공이다. 그 영화로 인해 그의 연기가 너무 식상하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송강호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는 평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그러나 송강호는 기생충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과시하며 영화계의 핵심임을 재확인시켰다.

 

기생충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송강호는 조철현 감독의 영화 ‘나랏말싸미’에서 무려 세종대왕의 역할을 맡았다. 한글창제에 대한 이야기를 포커싱하여 애민정신과 인간적인 모습을 담은, 어느 누가 봐도 나쁠 것이 없는 역할을 맡을 때까지, 그리고 그 영화가 다 만들어질 때까지 송강호는 지금의 상황을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영화는 개봉 후 한 달을 맞은 현재(23일)까지 관객이 채 100만 명을 넘기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변호인을 찍을 때부터 택시운전사까지 쌓아놓은 송 배우에 대한 사회적 존경심마저 깎아내리고 있다. 송강호의 신작으로 초반 개봉관이 적지 않음에도 관객은 들지 않았고, 유튜브 등 각종 미디어에서는 이 영화가 역사왜곡을 하고 있다고 저격하고 있다.

 

▲ 세종역을 맡은 송강호 (사진 - 네이버영화)     © 경인신문

 

이 영화가 역사왜곡을 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이유를 정리해 보자면, 한글창제가 세종의 역할이 너무 적고, 위서에 입각한 낭설을 마치 역사적 사실인 냥 포장해서 신미대사 한글창제설을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세종대왕에게 막말을 하며 대드는 신하들의 모습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비난과 결과적으로 신미대사의 업적을 유학자들에게 돌리면서 세종을 신미대사의 공을 가로채는 치졸한 왕으로 그렸다는 평가도 있는데, 이는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본 기자의 생각을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가 역사왜곡을 저질렀는지 여부는 단정하기 어렵다. 물론 주류학계의 정설은 세종의 단독 창제설이다. 그러나 한글창제의 과정은 아무런 기록이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창제된 한글, 따라서 그 과정은 어떤 상상이든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신미대사라는 실존 인물이 아니라 감독의 상상 속 인물을 창조해내어 그 자리에 가져다 놓는다 해도 그 시나리오에 반박할 수 없다. 차라리 미래에서 누군가가 타임머신을 타고 오는 장면을 넣고 신미대사와 똑같은 역할을 했다면, 오히려 역사왜곡이라는 비난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 영화가 비난 받는 가장 근본 이유는 너무 ‘진지’하다는 것이다. 마치 역사 다큐멘터리 같은 톤으로 영화를 찍어놓고는 그 근거를 위서로 판명이 난 ‘원각선종석보’에서 찾았다는 것이 비난의 중심이다.

 

▲ 영화 내용 중에 일본 승려들 앞에서 불경을 외는 스님들 장면 스틸컷 (사진 - 네이버영화)     © 경인신문

 

하지만 이 비난에도 전말을 정확히 봐야하는 측면이 있다. ‘원각선종석보’는 기존에 한글창제 이전에 신미대사가 쓴 것으로 알려져 한글창제에 신미대사가 관여한 것 아니냐는 근거가 됐다. 그러나 검증 결과 내부에 현대어가 쓰여 있는 등 20세기 이후에 제작된 위서라고 판명이 났다. 문제는 이 문서가 위서인 것이 곧 신미대사가 한글창제에 관여한 것이 절대 있을 수 없다는 근거가 되느냐는 것이다. ‘나랏말싸미’의 시나리오 원작이라고 알려진 '훈민정음의 길–혜각존자 신미평전'은 신미대사의 집안 족보를 근거로 쓴 책이고, ‘원각선종석보’는 보조근거의 역할을 했다. 다시 말해 ‘원각선종석보’에 신미대사가 한글을 창제했다고 나와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위서=역사왜곡”이라는 단순구도는 성립하지 않는다.

 

또한 조 감독은 소송까지 불사하며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신미평전을 원작으로 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신미대사가 한글창제에 기여했는지 안 했는지는 그 누구도 확답을 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한글창제를 주제로 쓴 연구논문이나 연구내용을 토대로 쓴 책에서는 신미대사 창제설 자체가 언급되지 않지만 범어는 물론이고 한자와 티벳 문자 등을 참고했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한다. 다만 그것들과 똑같이 복사한 것이 아니고, 세종의 아이디어가 가미되어 기존의 문자와는 완벽히 다른 문자라는 최종평가를 내리는 것은 상식적인 마무리다. 많은 자료는 한글이 몽골 파스파 문자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 영향이 산스크리트어에 집중되어 있는 모양새를 띈다는 것이 좀 다른 것이다. 파스파 문자는 산스크리트어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다른 모든 표음문자처럼 한글도 산스크리트어의 맥락 아래 있다는 것은 고민할 것도 없다. 산스크리트어는 고대 인도어로 우리말로는 범어라 한다.

 

자, 그럼 이제 이 도돌이표 같은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자.

 

▲ 한글창제과정에서 거로 의견을 나누는 세종과 신민대사(사진 - 네이버영화)     © 경인신문

 

영화가 설정한 가설은 주류설이 아니다. 하지만 주류설도 근거는 세종실록과 후대 유학자들이 남긴 기록이 전부이다. 물론 그 기록들은 위서가 아니다. 하지만 위서가 아니니 그 안에 있는 모든 내용이 전적으로 사실이라는 말 또한 성립할 수 없다.

 

다만 한글창제를 비밀리에 진행됐다는 것은 사실에 가까운데, 세종이 그렇게 진행한 가장 큰 이유는 유학자들의 반대이다. 이번 논란의 기폭제 역할을 했던 한 영화평론 유튜버는 범어가 필요했다면 언어에 정통한 신숙주 등에게 시켰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잠깐만 돌이켜 봐도 성립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과연 어떤 문자가 세종의 머릿속에서 오랜 시간동안 아이디어로만 들어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었다는 주장이 더 황당한지, 여러 기존 문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유학자들이 모르게 일을 진행할 만한 사람들을 찾았다는 것이 황당한지에 대한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다. 이런 주장을 비난하기 위해 일본을 끌어들이는 경향이 있는데, 과연 한 사람의 천재가 글을 만들어냈다고 보는 것이 한글을 깎아 내리는 것인지 그 천재를 포함한 여러 사람이 합심해 겨우 만들어낼 만한 일이라는 것이 한글을 깎아 내리는 일인지도 한 번 생각해 봐야하고, 마찬가지로 일본인이 주장했다는 근거를 좀 내놔야하는 것은 아닌지 반문해 본다. 지금까지 본 기자가 최근의 연구논문과 책을 10권 이상 봤지만 일본인이 그런 말을 퍼트렸다는 기술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하는 말이다.

 

물론 본 기자도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려고 고민하며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있는데, 창호지 문의 문양을 보고 한글의 모양을 떠올렸다는 풍문을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퍼트렸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바 있다. 일본이 한글을 깎아내리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세종이 혼자 한글을 만들었다는 지금의 정설 외에 모든 가설이 일본이 퍼뜨린 풍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편협한 생각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뒤늦은 이 기사와는 상관없이 대세는 이미 기울었고, 영화를 흥미롭게 본 기자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은 영화가 좋았다는 평을 마음속에만 담고 있어야하는 신세가 됐다. 만약 영화를 보지도 않고 인터넷상에서 떠도는 말만을 믿고 나랏말싸미를 ‘패싱’한 독자들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들여다보는 것이 어떨까 한다. 솔직히 꼭 영화관에서만 볼만한 내용은 아니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지금처럼 본 사람이 죄의식을 가져야할 만한 영화도 아니라고 덧붙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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