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관 취재부장   © 경인신문


[경인신문 이성관 기자] 일반적으로 언론의 소임이라 함은 공정성과 정확성, 신속성을 겸비한 기사로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소명은 판타지에 가깝다. 애초에 언론인들이 지어낸 허상일 뿐이라는 뜻이다. 신속한 보도는 정확할 수 없는 경우가 많고, 정확한 보도라고 모두 공정하지 않다.

 

사실 공정성이라는 말 자체가 허상이라는 것은 언론인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다. 이론의 기초 중 기초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정하지 않은 기사를 쓴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공정하지 않다고 해서 모두가 나쁜 기사는 아니다. 완전히 드라이한 사실만을 전한다 하더라도 그 기사를 어떻게 보도하는가에 따라 공정성은 훼손된다.

 

또 많은 경우 공정이라는 말과 평균이라는 말을 혼동하는데, 양쪽이 대립하는 경우 한쪽을 대변하는 만큼 다른 쪽도 대변해야 한다는 논리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만약 범죄를 저지른 자와 피해자를 취재한다고 했을 때, 언론은 범죄자의 말과 피해자의 말을 동등하게 보도해야 할까? 물론 그런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래선 안되는 경우가 더 많다. 좀 더 쉬운 예로 일본과 우리나라의 대립에서는 어떤가? 우리 언론은 일본 정부의 입장을 우리 정부의 입장만큼 보도해야 할까?

 

1946년에 미국의 언론인들이 '공평의 원칙'이라는 언론준칙을 만들었는데, 1980년대에 들어 폐지됐다. 공평의 원칙이 오히려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보도 기능을 억압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언론을 흔히 보수 언론, 혹은 진보 언론 등으로 나누는 것은 공평과 공정의 차이를 이미 일반 독자들도 안다는 뜻이다.

 

물론 말을 공평에서 공정으로 바꾼다고 해도 판타지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언론 역사를 통틀어 100% 공정한 기사는 단 한 번도 없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기자들은 적어도 80% 정도는 공정한 기사를 지향해야 한다.

 

80% 정도 공정하다는 말이 아이러니 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런 정도의 공정함을 지향해야 기사를 제대로 쓸 수 있다.

 

이제 지역 언론으로 눈을 돌려 보자. 지역 언론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그리고 소위 중앙 언론과 지역 언론의 소임은 어떻게 다를까?

 

지역 언론 중에는 세상 모든 일을 다루려고 노력하는 언론사가 꽤 있다. 물론 인터넷신문의 경우 못 다룰 이야기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앉아서 천리를 보는 세상이니 못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한계라는 것이 존재한다. 지역 언론의 재정과 근무환경, 직원수와 전문성 등은 한계가 분명하다. 어느 하나에만 집중해도 제대로 된 기사가 하나 나올까 말까 한 실정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이 '선택과 집중'이다. 지역에 대한 전문성이 없이는 쓸 수 없는 기사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지역 언론사의 가치는 높아진다.

 

정확성과 신속성은 지역 기자들의 장점이다. 현장에 간 사람이 쓴 이야기와 가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는 무조건 차이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발로 뛰는 기자가 필요하다. 아쉽게도 지역 언론사들의 사정이 좋지 않아 기자들을 많이 두기도, 또 현장에 계속 투입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하지만 할 수 있을 만큼 뛰는 것이 기자의 소임이라는 것을 반박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공정성인데, 앞서 말했듯이 판타지스러운 이 관념을 어떻게 80%까지 끌어올릴 것이고, 그 공정성의 방향은 어느 쪽이어야 하는가 고민해야 한다. 지역 사회의 문제는 보수,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적인 구분은 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 삶이 정치고 일상이 정치라는 말은 있지만 지역 사회에서는 너무 공자님 말씀 같은 이야기다. 실제 내 생활의 불편을 발굴해 취재하는 것은 지역 언론의 특장점이 될 수 있다.

 

지역 언론의 공정성은 약자에게 집중할 때 담보된다. 강자와 약자가 대립하면 언론은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 이것은 흔들릴 수 없는 대전제다. 이 대전제 아래에서 약자의 목소리를 전하는 것 자체로 원리적 공정성을 띄는 것이다. 특히 지역 언론의 경우는 토호세력과 지역 정치꾼들과의 연결고리가 단단한 경우가 많은데, 그 연결고리로 목숨을 연명해 오는 경우 또한 많다. 그런 지역 언론이 자신을 뒷받침해준 토호세력의 비리를 포착해 보도한다면 그 순간 언론의 소임을 제대로 했다는 건 증명된다. 그런 언론을 살리는 것은 지역 주민들의 역할이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메커니즘이 우리나라에는 거의 없다.

 

결과적으로 이런 행태가 지속되면 모두 도태될 것이라는 것은 불보듯 뻔하다. 지금부터라도 지역 언론이 집중해야 할 곳은 시청이나 기업의 홍보실이 아니라, 지역 경찰서, 소방서 등 사건사고를 다루는 곳이나 지역민들이 모여서 시위하는 곳, 골목상권을 침해하는 현장,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시 도의원 등의 비리 등 중앙 언론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는 취재거리가 있는 곳이다. 이런 취재를 지속적으로 해야 존재 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 따라서 지역 언론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기 전에 언론인 스스로 가치있는 역할을 하고 있는지 돌이켜 봐야 한다.

 

말론만 떠드는 공정성 말고, 발과 귀로 만드는 공정성이 필요하다. 그것이 지역 언론들이 지금 당장 가져야 할 소임이라 하겠다.

 

저작권자 © 경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