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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시니어 보릿고개안성시 기로회 회장 윤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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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07  15: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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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시 기로회 윤민용 회장            ⓒnews24

 “보릿고개 밑에서
아이가 울고 있다.
아이가 흘리는 눈물 속에
할머니가 울고 있는 것이 보인다.
할아버지가 울고 있다.
아버지의 눈물, 외할머니의 흐느낌,
어머니가 울고 있다.
소년은 죽은 동생의 마지막 눈물을 생각한다.”

- 황금찬 시인의 “보릿고개” 중에서

벌써 3월, 남쪽에서 이른 봄꽃 소식이 들려온다. 머지않아 내 고향 안성의 산과 들에도 봄꽃 향연이 펼쳐지리라.

나의 어린 시절 고향의 봄을 돌이켜 보면 그리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먹을 것이 턱없이 부족했던 시대라 늘 배가 고팠다. 내 나이 여든을 훌쩍 넘긴 지금도 그때의 배곯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보릿고개를 경험한 세대라면 무슨 말인지 짐작할 것이다. 보릿고개라는 말이 사라져 버린 지 오래라 젊은 사람들은 보릿고개를 잘 모를 수 있다. 햇보리를 수확할 때까지 넘기기 힘든 고개, 춘궁기라고 사전적 의미만 알아도 훌륭하다. 어린 학생들은 보리를 심어 놓은 언덕쯤으로 생각한다니 헛웃음이 절로 난다.

시인은 보릿고개를 에베레스트 산보다 더 높은 고개라고 말한다. 보릿고개가 태산보다 높다는 속담도 있다. 한없이 높은 고개, 굶으며 넘던 고개, 누군가는 죽어서 못 넘은 코리아의 보릿고개... 이제는 국어사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옛 추억 속의 말이라고 여겼던 보릿고개가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맞은 대한민국 사회에 여전히 존재한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바로 ‘시니어 보릿고개’다. 우리나라의 노년층은 시니어 보릿고개라는 말이 나올 만큼 삶이 고단하다.

혹자는 가난을 미덕이라 말한다. 또 누군가는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단지 불편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가난한 노인세대에게는 이 모든 말이 공허한 말잔치에 불과하다. 가난은 미덕도 아니요, 조금 불편한 것도 아니다. 노후의 가난은 병든 몸을 이끌고 힘겹게 넘어야하는 ‘21세기 보릿고개’일 뿐이다.

예전에는 나이든 어르신은 그 마을 구성원 모두에게 존중의 대상이었다. 그 어르신의 농사의 지혜가, 삶의 지혜가 가치를 인정받았으며, 집안의 정신적 지주이자 버팀목이었다. 오늘날은 어떤가? 낡은 지식과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지닌 구세대이고, 젊은 세대의 짐이라고 생각하고 있진 않은가? 후손에게 정성어린 봉양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부양조차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자식농사 잘 지으면 노후 걱정 없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자식에게 노후를 기대는 시대는 지났다. 오죽하면, 똑똑한 아들은 나라의 아들, 돈 많은 아들은 사돈네 아들, 빚진 아들이 내 아들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왔을까. 자식들도 먹고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자식에게 부담주기 싫으니 어쩔 수 없다. 연골이 다 닳아 없어지고 허리가 꼬부라질 때까지 밥벌이 하다가 그마저 힘들면 기초연금에 의지해 보릿고개를 넘기는 수밖에.

노인의 3대 문제는 빈곤, 질병, 고독이다. 흔히 노인 3고(苦)라고 한다. 우리나라 노인들은 빈곤과 건강문제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다음으로 여가 선용과 오락 및 외로움을 달래주기를 원하고 있다. 우리나라 65살 이상 노인 빈곤율은 48%로 OECD 회원국 평균보다 4배가량 높고, 노인 10명중 6명이 3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앓고 있고, 5명중 1명은 독거노인이라는 SBS 방송 보도가 있었다. OECD 국가 중 빈곤율과 자살율 1위라는 부끄러운 기사도 보인다.

몸 아픈 것이야 생로병사의 하나인지라 누구도 피해갈 수 없기에 감내하고 살아간다 해도, 내 청춘을 바친 이 나라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릴 만큼 잘살게 되었다는데, 노년에 이르러 또다시 보릿고개와 마주하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젊은 시절 허리띠를 졸라매고 잘 살아보자고 밤낮 없이 일하며, 개인 보다는 사회와 국가를 위해 살아온 세대들인데 어쩌다 이런 처지가 되었나? 서글프다.

지금의 경제 발전과 민주화가 하루아침에 저절로 이루어진 일은 아닐진대, 우리사회의 어르신에 대한 예우는 많이 부족하다. 예우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그들이 하루하루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이 사회가 외면하지 말고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통에 공감해주길 희망할 따름이다.

고맙게도 내 고향 안성에서 어르신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었다. 만70세 이상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어르신 건강지킴이 의료비 지원 사업을 시행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안성지역화폐를 지급하여 지역 병의원 및 약국, 약방 등에서 사용할 수 있다고 하니, 지역 어르신들에게 꼭 필요한 혜택이 아닐 수 없다. 내 고향이 나를 잊지 않고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준다는 사실이 감동을 더한다.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도 기대되니 일석이조, 아니 일석삼조라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반가움도 잠시, 이 사업이 난관에 부딪혀 시행이 불투명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이유를 추측컨대, 의료비 과잉 지출 걱정, 건강보험재정에 영향을 준다는 등, 보건복지부에서 우려를 표명하는 목소리 때문이 아닐까?

정부는 지난 해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혁신적 포용국가의 비전을 공개했다. 1999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2018년 ‘혁신적 포용국가’로의 전환을 선언하면서, 모든 국민이 생애 전 주기, 삶의 모든 영역을 대상으로 모두가 잘사는 나라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2023년까지 삶의 질 세계 20위, 건강수명 75세, 상대 빈곤율 15.5%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안성시가 추진하는 어르신 지원 사업이 바로 정부가 제시한 ‘혁신적 포용국가’라는 목표에 부합하는 사업이며 미래 지향적인 사업이다.

2017년 8월 한국은 본격적인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모두가 걱정한다. 노년층이 늘어나니 그만큼 사회가 부양해야하는 부담이 커지고 늘어나는 복지예산을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고.

“노령인구 증가보다 출산율 감소가 더 큰 문제” 2018년 12월 한 시사 주간지 기사 제목이다. 이 기사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등 노령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지만 우리 사회에 버틸만한 힘이 있다는 분석이다. 전체인구대비 노령인구 비율을 따지면 한국은 대다수 선진국에 한참 못 미치고, 노령화보다는 오히려 저출산 문제를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한다고 지적한다. 통계청이 지난달 27일 발표한 우리나라 작년 출산율 0.98명이라는 충격적인 숫자가 이 주장에 힘을 보탠다. 참고로 정부는 저출산 대응 정책에 2006년부터 지금까지 130조원의 예산을 썼다. 그 효과는 0.98명이라는 숫자가 역설적으로 대변한다. 이에 비하면 어르신 건강지원사업에 들어가는 예산은 어르신의 건강 증진에 즉각적이고 확실한 도움을 줄 것이다.

선진 사회, 복지 사회, 행복 사회란 어떤 사회인가? OECD 최하위 수준의 노인 빈곤율은 무시한 채 토목, 건축 등 시설비 예산을 우선시하는 사회가 진정 잘사는 사회인가? 보편적 복지 확대라는 방향성 또한 사회적으로 이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사회보장기본법은 지방자치단체가 국민 복지증진 업무에 나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된 우리 세대가 보릿고개로 시작해 보릿고개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은 없어야 한다. 어르신 건강지킴이 의료비 지원 사업은 마을 어르신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이다. 안성시의 선한 정책 의지가 왜곡되고 오도되어 어르신 건강지킴이 사업이 좌초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어르신들 마음의 허기까지 달래줄 희소식이 하루빨리 전해지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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