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김진희 선수, 정권홍 감독, 최의석 선수
▲(왼쪽부터)김진희 선수, 정권홍 감독, 최의석 선수

[경인신문=최철호 기자]대한민국 데플림픽 가라테 국가대표팀이 첫 출전 만에 동메달 2개를 획득하는 기적 같은 성과를 거두며 국내 비주류 종목의 한계를 뚫고 세계무대에 강렬한 존재감을 남겼다.

가라테(공수도)는 국내에서 국기(國技) 태권도와 비교되며 관심 밖에 놓여 있던 종목이다. 전문 선수 육성팀도, 후원도, 체계적인 기반도 거의 없는 현실 속에서 선수 모집조차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무(無)에서 유(有)를 만든 지도자’ 정권홍 감독의 헌신과 선수들의 집념이 이 불가능에 가까운 여정을 가능하게 했다.

■ “두세 명으로 시작한 팀… 지금은 데플 선수 30여 명으로 성장”

대한장애인가라테협회 총괄본부장이자 이번 데플림픽 감독을 맡은 정권홍 감독은 처음엔 단 두세 명의 선수와 함께 기본 기술을 가르치며 시작했다. SNS 공개모집, 지인 추천 등으로 어렵게 모인 선수들이 늘어나며 10명 이상이 도장을 찾기 시작했고, 현재는 약 30명의 데플(청각장애) 선수들이 등록해 활동 중이다.

정 감독은 개인 도장에서 주 2회 무료 교육을 제공하며 선수들을 키워냈다. 서울·충남·경북·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용인까지 찾아오는 선수들을 보며 “누군가 따뜻한 밥 한 끼라도, 음료수 한 병이라도 후원해줬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고 회상했다.

■ 대한장애인체육회·한국농아인스포츠연맹의 승인… 첫 데플림픽 출전 기회 열리다

짧은 시간 동안 선수층과 기반을 갖춰가던 협회는 대한장애인체육회와 한국농아인스포츠연맹의 관심 속에서 공식 인정단체로 승인받았고, 이번 데플림픽에 참가할 기회를 얻었다.
대표팀은 3차에 걸친 국가대표 선발전 끝에 김진희·최의석·박상규 선수 3명을 최종 발탁했다.

이들은 각자의 생업을 이어가며 시간을 쪼개 훈련해야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자비로 일본 전지훈련을 다녀오고, 대한장애인체육회 지원으로 선수촌에서 전문훈련을 받으며 데플림픽을 향한 마지막 담금질을 했다.

▲대한장애인가라테협회 임원단
▲대한장애인가라테협회 임원단

■ 협회 임원진의 ‘현지 총출동’… 선수들에게 큰 힘

이번 대회에서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대한장애인가라테협회 민광원 회장을 비롯한 부회장단, 이사진등 10명이 직접 일본 현지 경기장을 찾아 선수들을 응원한 점이다.

민광원 회장은 “한국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임원단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함께 싸우겠다는 자세로 현지에 갔다”며 “우리 선수들이 들리지 않아도 세상에 큰 울림을 남겼다”고 말했다.

또한 데플림픽 대한민국 선수단 문경화 단장을 비롯해 대한장애인체육회,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 등이 경기장을 찾아 응원을 보내 큰 힘이 되었다는 평가다.

■ “첫 출전,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각오”… 정권홍 감독의 진심

정 감독은 이번 대회를 두고 “처음이지만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고 말했다.
이어 “가라테 종목에 출전 기회를 얻은 만큼 보답하지 못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선수들과 하루하루를 버텼다. 메달 하나만이라도 간절히 바랐는데, 선수들이 동메달 2개를 선물해줬다. 감사할 뿐”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정 감독은 현재 장애인스포츠지도사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어떠한 포상도 받을 수 없는 현실을 언급하며 “내년부터는 자격 취득과 지도자 양성, 전국 시·도 지부 설립 등 기반을 다져 대한장애인체육회 정가맹을 이루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권홍 감독 “이제부터 시작”

이번 성과는 선수들의 헌신, 대한장애인가라테협회의 노력, 대한장애인체육회·한국농아인스포츠연맹의 지원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기적에 가깝다. 비인기 종목, 열악한 환경, 전무한 지원 속에서도 대한민국 가라테 대표팀은 세계 무대에 ‘첫 걸음’을 내디디며 가능성을 증명했다.

민광원 회장은 “이번 성과를 계기로 가라테 종목이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임원진이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정권홍 감독은 마지막으로 “이제 진짜 시작이다. 한 단계씩 다시 쌓아 다음 데플림픽에서는 더 큰 기적을 보여주겠다”며 새로운 도전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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