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끼 식사 해결위해 불편함 감수해야 하나?

장맛비가 한 차례 지나간 날 무척이나 후텁지근한 날씨에 짜증이 날만도 하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안성시 서인동 시장골목 안 공중화장실 쪽으로 백발의 어르신들이 한두 명 씩 모여들고 있다. 화장실을 가는 게 아니고 공중화장실 2층 무료급식소를 찾는 어르신들이다.

15평 남짓한 무료급식소는 삶에 무게를 지고 있는 어르신들에게 한 끼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문을 여는 무료 급식소는 독거노인, 무의탁노인, 노숙자 등이 이용하지만 일반 어르신들도 가끔 찾는다고 한다. 하루에 적게는 60명에서 많게는 100여명까지 찾아오는 곳이라고 한다.

무더운 날씨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그 흔한 에어컨 하나 없는 공간에서 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닦으며 일하는 봉사자들과 식사를 하러 오시는 어르신들로 점심시간은 북새통을 이룬다.  이곳 무료급식소는 2004년 경 부터 다른 곳에서 무료급식소를 운영해온 김석근 소장이 지난2007년 8월에 이곳으로 옮겨와 무료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다.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어르신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박우열 기자
그런데 왜 하필 급식소가 공중화장실 2층일까?
안성시에서 다중이용시설을 이용하는 시민들과 시장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이곳에 공중화장실을 지었다. 마침 그 건물 2층에 빈 공간이 있었고, 거기를 무료급식소 용도로 사용하도록 시에서 허락을 했다고 한다.  집세, 전기료, 수도료 등 모든 공과금 없이 사용토록 해준 덕분에 지금까지는 아무 탈 없이 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급식소가 있는 장소가 공중화장실 2층이다 보니 요즘같이 기온이 상승하는 여름에는 악취로 인해 급식소를 이용하는 어르신들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급식소 찾고 있다.  더욱이 화장실 입구는 시도때도 없이 청소년들이 찾아와 흡연행위는 물론, 노상방료로 인한 악취가 심각한 수준이다.
“냄새는 조금 나죠, 그래도 상관없어요, 조금 불편해도 100원이면 식사를 할 수 있어 좋아요”라며 어르신들은 합판으로 만들어진 남루한 식탁에 둘러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시장 통 골목의 공중화장실은 여건상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간이다 보니 관리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시장상인과 시장을 찾는 시민들도 이곳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코를 막고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곳에 급식소가 있어 이곳을 찾는 어르신들의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팔순의 할머니가 무료 급식소에서 식사를 하고있다.    사진/박우열 기자
특히 이곳은 해가지면 청소년들의 탈선장소(흡연, 애정행각)로 알려지면서 시민들은 이용을 꺼리고 있으며, 넘쳐나는 쓰레기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가끔은 주위에 계신 어르신들이 청소를 하지만 아침만 되면 넘쳐나는 담배공초와 휴지, 가래침 등 때문에 불쾌하기 짝이 없다고 하소연 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이곳에서 흡연을 하는 학생에게 주위에 사는 어르신이“담배를 피우려면 다른 곳에 가서 피워라” 며 질책하자 욕설과 함께 어르신의 얼굴에 담배연기를 뿜었던 일도 있었다며, 노인 경시풍조와 경노효친사상의 몰락을 한탄하기도 했다.

이곳을 찾는 어르신들에게 한 끼 점심으로 배만 채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급식소의 쾌적한 환경과 주위의 여건도 중요하다. 음식을 먹는 장소와 화장실이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부익부 빈익빈’현상이 주는 현실일까?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고령화 시대로 들어섰다. 우리들의 부모님들이 화장실 옆에서 한 끼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병들고 지친 몸을 이끌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하는 우리의 현실을 어떻게 볼 것인가.

▲ 96세의 어르신이 불편한 몸으로 늦은 점심을 드시고 있다.    사진/박우열 기자
많은 것들이 아이러니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 나라의 부흥과 자식들을 위해 한평생을 다 바쳐온 우리들의 부모님들에게 우리 모두가 죄를 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뒤돌아 볼 때다.

부모님을 돌보고 어르신들을 공경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며  행정기관의 적극적인 관심과 모든사람들의 사랑도 필요할 때다.  이제 더 이상 우리세대의 최고 어르신들이 한 끼 식사를 위해 화장실 옆 계단을  힘겹게 오르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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