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신정아와 블랑쉬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퓰리처상 수상에 빛나는 수작 중의 수작입니다.
이 작품은 연극무대 단골 소재인데다 영화로도 제작되는데,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와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여실히 드러내서 큰 반향을 일으킵니다.
작가 테네시 윌리엄즈는 미국 남부 뉴올리언즈 빈민가를 배경으로 허영심 많고 무절제한 여주인공 블랑쉬가 어떻게 극단적인 타락의 과정을 밟게 되는지를 적나라하게 그려냅니다. 관객들은 블랑쉬의 끝없는 욕망과 비참한 파멸을 지켜보면서 문득문득 나도 저런 상황에서 저럴 수 있지 않을까 감정이입에 전율하고는 합니다.
요즘 신정아씨의 자전 에세이 한 권이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고 있습니다. 비단 예술계는 물론 정관계, 법조계, 언론계, 학계, 의료계에 이르기까지 그 파장이 대단합니다. 처음에는 ‘참회록’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참회록은 분명 아닌 것 같고 도대체 ‘폭로극’인지 ‘고발장’인지 분간이 안 되고 헷갈립니다.
내로라하는 유력인사들을 실명 또는 영자 이니셜로 거명하지 않나, 자신의 외할머니라며 전대통령 영부인을 연상시키지 않나, 거침이 없습니다. 그렇게 세간의 관심과 궁금증을 유발해서인지 출간 이틀 만에 5만부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해냅니다.
저자의 ‘노출증’과 우리 사회의 ‘관음증’이 결합된 현상이라는 그럴 듯한 분석이 뒤따르지만, 참 씁쓸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어찌됐든 이 책에서 묘사된 21세기 초반 현재 대한민국 일부 지도층의 치부는 희곡으로 그려진 20세기 전반 미국 뉴올리언즈 빈민가의 치부보다 더 하면 더 하지 덜 하지 않습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몰염치한 행태가 민낯을 보이고, 추한 욕망들의 충돌이 어지러울 지경입니다.
블랑쉬는 가공인물이지만, 신정아씨는 실재인물이기에 충격이 더 큽니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신정아씨의 자전 에세이가 역대 그 어떤 베스트셀러 판매고를 경신할지 모르겠습니다.
‘낙양지귀’(洛陽紙貴)라는 고사성어가 떠오를 정도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번 파문이 이렇게 떠들썩과 호들갑으로만 끝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종이 값만 올리지 말고 우리 지도층의 도덕수준도 한층 올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다시는 이런 류의 책이 버젓이 등장해서 가뜩이나 살기 힘든 서민들을 심란하게 만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교과서적인 얘기지만, 지도층이 지도층다워야 나라와 사회의 기강이 바로 섭니다.
전 한나라당 안성시위원장 현 개성공단
지원재단 사무국장 안상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