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을 나눠주는 죽산면 구메농사마을

 
가늘게 쪼갠 대나무 직접 손으로 엮어 정성 가득 한나절에 서 너개 정도 만들어 "중국산과 비교할 수 있나요"

경기 안성시 죽산면 구메농사마을 마을회관. 설날을 앞두고 일손이 바쁜 복조리 마을을 사전연락도 없이 찾아 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취재진이 찾아간 10일은, 할머니들이 설을 지내기 위해 면 소재지로 머리를 하러 가셨단다. 그래도 회관엔 복조리를 만드느라 남아 계신 할머니들의 일손이 바쁘다. 취재진이 들어서자 한 할머니가 일어나서 어수선한 방을 빗자루로 치워대자 옆에 계신 장수환씨(81)는 “있는 그대로 사진을 찍어야 잘 나오는겨„하면서 능숙한 어조로 빗자루 질을 그만두라 하신다.

이곳 주민들은 설날을 앞둔 요즘이 가장 바쁘다. 연중 수시로 베어 창고에 보관한 1년생 조릿대를 11월부터 쪼개고 엮어 정초까지 모두 복조리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작업 장소는 마을 주민들의 사랑방인 마을회관. 뜨끈뜨끈하게 불을 지핀 온돌방에 앉은 십여명의 주민들이 온종일 복조리를 만들며 이웃과 이야기꽃을 피워 낸다. 설 연휴 동안 치를 마을일이나 집안일에 관한 화제가 오가자 들뜬 분위기가 마을회관을 가득 채운다. 

장수환(81)할머니의 능숙한 솜씨가 한 눈에 들어온다. 18세에 시집와서 평생을 복조리를 만들며 살아 오셨단다. “전엔 복조리를 만들어서 아들 딸 학교 보내고 먹고 살았다„고 자랑하시며 가늘게 쪼갠 대나무를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엮어 나가는 중이다.
“복조리는 이렇게 큰 게 원조예요. 손바닥만 한 것으로 어느 세월에 쌀을 일겠어요? 우리는 구별하기 위해 이렇게 큰 것은 ‘밥조리’라고 불러요. 밥할 때 쓰는 조리란 뜻이죠.”

▲마을회관에 모여 복조리를 만들고 있다.   ⓒ경인신문, 안성복지신문
복조리의 종류는 큰 것과 작은 것 합쳐서 모두 10여 가지다. 큰 복조리는 가마솥만하고 작은 것은 장식품으로 자동차 등에 걸어 놓는 용도로 쓰여 진다. 원래 복조리는 쌀을 이는 것이 원조 복조리 였던 것이 세월이 지나면서 용도나 쓰임새가 다양해 졌고 지금은 한 해 무병장수와 복을 받는 의미로 집안이나 사무실 등에 걸어 둔다.

“설을 앞두고 장사꾼들이 복조리를 한 지게씩 사갔어요. 집집이 다니며 마당에 몇 개씩 던져 놓으면, 집 안 사람들이 마중 나와 복이 들어왔다며 샀다고 하네요.” 그때 사람들은 설날에 1년 동안 사용할 복조리를 사서 방 안이나 대청 한 귀퉁이에 걸어놓고 복을 기원했다고 한다. 쌀을 일듯 액운을 걸러 버린다는 뜻이 복조리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진영숙 마을 사무장(52)은 "이곳은 전국에서 유일한 1개 밖에 없는 복조리 마을 공동작업장으로, 예전엔 전국 각지에서 복조리를 사러 오는 통에 다들 눈코 뜰 새 없이 밤을 지새우며 만들었다"며 자랑이 한창이다.

올해 마을숙원사업으로 대나무 이식사업을 추진 중이다. 작업하시는 할머니들의 연세가 연로해서 산에서 대나무를 지고 내려오기가 힘들어서 작업장 인근 야산으로 대나무를 이식하는 거다.
“15만평 규모의 대나무가 기후이변으로 공급량이 크게 줄어서 조릿대 부족으로 제때 물량을 대주기가 힘들다. 30만평 규모가 적당하다.„고 설명했다.

최복순(64)할머니는 “조릿대를 쪼개는 작업이 남들 보기엔 쉬워 보여도 힘이 든다. 대를 크기별로 나눠서 복조리의 크기에 맞게 선별해야한다. 장식용으로 쓰이는 작은 복조리 만드는 작업이 가장 어렵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안명선(81)할머니는 취재진에게 복조리를 건네며 “복조리를 사서 복을 많이 받아라„고 말하며 사진이 잘 나왔는지 확인 좀 하자며 꼼꼼히 살피는 여유도 부렸다.
남봉선(70)할머니는 “우리가 손으로 직접 만든 복조리가 단연 최고”라며 “중국에서 수입된 복조리로는 복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한다. 공장에서 찍어낸 복조리엔 정성이 담기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다.
심봉애(77)할머니는 “손이 빠르면 한나절에 대여섯개, 그렇지 않으면 서너개 만드는 게 고작. 그래도 겨우내 소일거리가 있어 심심하지 않아 좋고, 용돈도 벌고 치매 예방도 되니 일석삼조다.„ 며 웃는다.

마을회관은 박성수(53․ 2002년 경기으뜸이 선정) 복조리 장인을 주축으로 마을 주민들이 매일같이 모여서 복조리를 만드니 서로에 대한 우애가 남달랐다.

진 사무장은 “복조리 판매장을 시에서 지원해 주었다. 판매장이 큰길가 도로변에 설치되면 도매 위주에서 소매로 판매방식이 전환돼 수익이 배가 될 수 있어 주민들의 기대가 크다„며 판매장 설치 계획에 꿈이 부풀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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