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근 개인사찰서 봉업사 명칭 사용 논란

▲유형문화재가 표시된 도로옆 간판                             ⓒ뉴스24

 [뉴스24 = 박우열 기자] 죽산면에 위치한 고려시대 大사찰이었던 봉업사지 인근 개인사찰에서 봉업사라는 사찰명을 사용해 논란이 되고 있다.

시·도 기념물 제189호로 지정된 봉업사지(奉業寺址)는 고려시대 사찰터로서 고려 태조 왕건의 진영(眞影;초상화)을 모신 진전사원으로 역사적 위상이 높은 사찰 터다.

또한, 배후에는 삼국시대 석성인 죽주산성이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에는 많은 불교석조문화재가 산재해 있어 고고학뿐만 아니라 미술사적 측면에서도 그 가치가 매우 높은 곳이다.

봉업사지는 그동안 죽산 매곡리 폐사지로만 알려져 왔었는데 1966년 경지정리 과정에서 향로와 향완, 반자 등이 발견되면서 ‘奉業寺’라는 명문이 발견돼 비로소 봉업사지로 알려지게 됐다.

이렇듯 역사적 가치가 높아 보호받아야 하고 보존해야 할 봉업사라는 사찰명이 수년 전부터 봉업사지 옆 개인사찰에서 사용하며 논란이 일고 있다.

▲유형문화재가 표시된 간판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뉴스24

 봉업사지 인근에 있는 봉업사라는 사찰은 용화사라는 개인사찰 자리로 수년전 모 스님이 사찰을 인수해 들어오면서 부터 봉업사라는 사찰명을 사용하고 있다.

더구나 도로변에 있는 봉업사 사찰안내 표지판에는 유형문화재 제97호(사진)를 표시해 불특정 다수에게 홍보하고 있어 마치 봉업사가 문화재를 소유하고 있는 사찰로 오인되고 있다.

봉업사라는 사찰의 명칭이 중요한 이유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말하는 ‘고려 태조의 진영을 모셨던 비봉산 아래의 봉업사’가 바로 이곳임을 밝혀주는 것으로, 사찰의 중요성이 증명되기 때문이다.

태조의 진영을 모셨다는 것은 이곳이 진전 사원이었다는 의미인데 진전사원이란 왕실의 의지에 따라 죽은 왕의 진영을 모시고 위업을 기리며 명복을 비는 사찰로 태조의 진전사원은 당시 전국의 이름난 사찰(개성의 봉은사, 논산 개태사 등)에 두었다.

봉업사의 역사와 유래가 하나씩 밝혀지고 알려지며 안성시와 경기도에서는 봉업사지의 역사적 가치를 찾고 재조명하기 위해 수차례에 걸친 발굴조사와 함께 논문발표, 학술 세미나를 여는 등 사적지 지정을 위해 적극적인 면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 향토사학자인 A씨는 “역사적으로 보아도 안성에서의 봉업사지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중요한 사찰 터”라면서, “다른 곳도 아닌 봉업사지 인근에 또 다른 봉업사가 있다는 것은 한마디로 역사를 왜곡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인근 주민 B씨는 “문헌을 통해서도 역사적 가치가 있는 사찰이란 것이 밝혀졌음에도 동일한 사찰명을 사용한 것은 고의성이 다분한 것 같다”면서, “향후 봉업사지를 비롯한 인근이 사적지로 지정되고 복원까지 된다면 더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며 봉업사 사찰명 사용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봉업사지에 남아있는 5층 석탑과 당간지주                                 ⓒ뉴스24           

 시 관계자는 “처음부터 봉업사 명칭사용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사찰명 사용에 대해 안성시에서는 마땅히 제재할 방법은 없다”면서,“조만간 스님을 만나 심도 있게 논의해 보겠다”고 말했다.

인근 주민들도 “현재 봉업사지에서 직선거리로 1km도 안 떨어진 곳에 봉업사가 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라면서, “우리 죽산지역이 경기도의 경주라는 애칭이 있는데 사소한 것부터 바로잡아 문화재의 보고 죽산면의 위상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봉업사지는 그동안 수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추정목탑지와 진전지, 범종 주조유구 등을 비롯한 35개소의 건물지가 확인됐으며, ‘개차(皆次)·죽주(竹州)·능달(能達)·화차사(華次寺)·준풍4년(峻豊四年)·건덕5년(乾德五年)·태화육년(太和六年)’명 등 50여 종에 달하는 명문기와와 소조불편, 중국자기류, 고려청자 등이 출토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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