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찬 안성시의회 산업건설위원장

▲이영찬 안성시의회 산업건설위원장   ⓒ뉴스24
지난 8.15일은 우리가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는 광복절이다.

광복은 일제 패망의 당연한 결과이자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그들의숭고한 희생정신을 우리는 항상 기억하며 그들에 대한 예우에도 소홀하지 말아야 한다.

제72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사라져야 한다”라고 밝혔다.

일제치하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과 그 후손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고귀한 헌신에 대해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하고 있다.

일례로 원곡면 외가천리에 살면서 24세의 나이로 3.1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해 징역 10년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르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한 김순서 선생이 있다.

국가보훈처의 자료에 따르면 김순서 선생은 전국 3대 실력항쟁으로 평가받는 안성의 3.1독립운동 당시인 1919년 4월 1일에 원곡면 사무소 앞에 집결해 대한독립 만세를 부른 뒤 만세고개를 거쳐 양성면에서도 만세시위운동에 앞장섰으며 일제의 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지고 사무실에 불을 질렀으며 우편소 등을 파괴하고 전신주를 파괴했다.

또,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빛나는 대미를 장식한 쾌거로 기록되고 있는 부민관 폭파의거는 금광면 개산리 출신의 유만수 선생의 실력항쟁운동이다. 하지만, 부민관 의거가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의거를 주도한 유만수 선생의 고향인 안성에서조차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부민관 폭파의거는 패망을 얼마 남기지 않은 일제의 살인적 수탈과 가혹한 탄압이 극에 달하던 1945년 7월 24일 오후 9시 10분경 친일파 거두들이 모여 일제에 충성을 맹세하는 이른바 ‘아세아 민족 분격 대회’가 열리던 경성(지금의 서울) 한 복판 부민관(현재 서울시의회)을 폭파한 거룩한 의거다.

이 의거는 안성 출신의 유만수 선생이 조직하고 임시의장으로 활동한 대한애국 청년당원들로서 유만수 선생이 이 의거를 지휘하고 직접 폭탄을 구해 설치한 주인공이다. 부민관 폭파 의거를 주도한 유만수 선생은 이름을 얻자고 한 일이 아니라며 자신이 한 일을 세상에 내세우지도 않았을 뿐 더러 독립유공자 신청도 하지 않았다고 후손들은 전한다 해방 후 유만수 선생은 무허가 판자촌에서 거주하며 철공일로 생계를 어렵게 꾸려가셨다고 한다.

2016년 11월에는 ‘안성지역 독립운동과 독립운동 인물’ 학술심포지엄이 열렸다. 이 심포지엄에서 안성 출신 독립유공자가 전국에서 세 번째로 많고, 경기도에서는 가장 많다는 사실이 확인 됐으며, 선열대상이 300명이 넘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혀졌다.

안성시는 고려대학교 산학협력단을 통해 안성지역의 독립운동 인물들을 발굴하고 관련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학술연구 용역을 진행했다. 조사결과 안성 출신과 안성을 연고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210명의 행적 사실을 확인했으며 포상 가능한 독립운동가 최대 59명까지 새롭게 발굴됐다.

이러한 조사결과는 안성이 명실상부 3.1운동 전국 3대 실력항쟁지임을 재확인시켜 주는 것이며, 안성이 의병, 청년운동, 사회운동, 의열투쟁, 광복군 등 광범위하게 항일운동을 펼친 지역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안성시 그 어디에도 독립유공자에 대한 예우나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흉상 하나도 찾아보기 어렵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안성 출신 독립유공자에 대한 예우는 물론 숨은 독립유공자를 발굴해 흉상 설치를 통해 그들을 기릴 수 있도록 하는 움직임이 필요하며. 아울러 안성의 3.1실력항쟁운동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자료 복원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경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